고구려 황금 인장과 동북공정: 유물 하나로 국가의 정체성을 지울 수 있는가?
중국 지린성 박물관에 기증된 ‘진고구려귀의후(晉高句驪歸義侯)’ 황금 인장을 둘러싸고 다시금 고구려의 역사가 시험대에 올랐습니다. 이 글은 해당 사건의 배경과 역사 왜곡의 본질을 고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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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황금 인장 하나로 고구려를 ‘지방 정권’으로 만들 수 있는가?
중국 CCTV와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는 2025년 5월, ‘진고구려귀의후’라는 글자가 새겨진 황금 인장이 지안시 박물관에 기증되었다며, 이를 통해 고구려가 고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장에 쓰인 ‘귀의(歸義)’라는 단어를 ‘복속’의 의미로 해석하며, 고구려가 서진 왕조에 신복(臣服)했다고 해석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사료의 맥락을 무시한 편의적 해석입니다. 인장은 외교적 수사이자 형식일 뿐이며, 실제로는 고구려가 자주적 외교 주체로서 중원 왕조와 교섭했던 결과로 이해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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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북공정은 과거의 왜곡이 아니라 오늘의 전략이다
중국은 1990년대부터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명칭 아래, 고구려와 발해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작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이는 단지 학술적 의견 차이를 넘어, 국가적 정체성과 영토 권리 주장의 정당화를 위한 역사 전쟁입니다.
중국이 대학 교재, 박물관 전시, 교과서 등을 통해 “고구려는 중국의 변방 정권이었다”고 반복적으로 서술하는 것은, 문화적 영향력 행사이자 정신적 영토 확장 전략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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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책봉’은 예의일 뿐, 지배가 아니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책봉과 인장은 단지 지배-종속 관계의 증거가 아니라 국제질서 내에서의 상호 인정과 외교적 의례였습니다. 고구려는 자국의 군주를 국왕이라 칭하고, 고유의 율령과 군사조직, 문화를 유지한 명백한 자주 국가였습니다.
중국이 이번에 문제 삼은 황금 인장조차도, 고구려가 스스로의 위상을 중원에 알리기 위한 수단이었을 수 있습니다. 즉, ‘귀의후’라는 표현은 당시 국제 관계에 대한 상호적 언어였지, 일방적 복속의 증거는 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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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한국 사회의 침묵은 침식의 시작이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사안에서 가장 우려되는 점은, 한국 정부와 사회의 무대응입니다. 반복되는 동북공정형 역사 왜곡에 학문적, 문화적, 외교적 대응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미래 세대에게 왜곡된 역사를 유산으로 남기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제는 사료, 유물, 교과서, 문화콘텐츠, 학술교류 모든 영역에서 정체성의 균형을 바로잡는 총합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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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며: 유물은 증거지만, 해석은 권력이다
고구려 황금 인장은 중요한 역사 유물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하느냐는 해석자의 의도에 달려 있습니다.
오늘날 동북공정은 단순한 역사 논쟁이 아니라, 문화 주권과 정체성 투쟁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역사는 물증뿐 아니라, 해석과 의지의 결과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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