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1. 《일본 관찰 30년: 한국이 일본을 이기는 18가지 이유》
8장: 질 수밖에 없는 전투를 끝내고 얻은 교훈
태평양전쟁 중반 미군에 밀려 열세였던 일본군은 마지막 회심의 승부수로 던진 마리아나제도 해전에서 처참하게 패배한 역사가 있다. 지금에 와서 냉정하게 분석해보면 일본군은 질 수 밖에 없는 전투를 한 것이다. 당시 일본군은 왜 이렇게 어리석은 판단을 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태평양전쟁에서 일본군이 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최근 일본의 IT업계 및 기업이 경영에서 실패하는 이유는 매우 닮아 있다. 역사는 반복되므로, 태평양전쟁 때의 일본인의 사고와 현대 일본인의 사고가 같다면 우리는 선제적 사고를 할 수 있다. 그래서 실패의 본질을 연구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태평양전쟁 막바지에 이르러 일본은 벼랑 끝에 몰리게 된다. 일본은 세계 최강의 전함 야마토를 필두로 많은 함정과 함재기를 동원하여 전투를 시작한다. 연합함대 사령부는 먼저 당대 최강의 제로센 전투기 250기를 띄워 적의 함대를 공격하게 했다.
당시 함재기(艦載機, 군함에 탑재된, 또는 그곳에서 운용 가능한 항공기)였던 제로센 전투기는 공중전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던 비행기였고 조종사들의 전투 능력 또한 세계 최강이었다. 이들을 보내어 연합 함대뿐만 아니라 일본의 총사령부인 대본영에서는 승리를 예감하며 축배를 든다.
하지만 기다리고 기다리던 승전보는 오지 않았고, 대승을 거둘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제로센 전투기는 미국 전투기의 공격 앞에 맥을 못 추고 격추당한 채 귀함하게 된다. 대부분의 전투기를 잃은 연합함대는 무방비 상태에서 미국의 전투기 공습을 받아 전함 야마토는 물론 주력 함정이 모조리 격침되면서 재기불능 상태가 된다.
일본이 참패한 이유는 크게 3가지다.
1. 공중전에서 연패했던 미국의 레이더 개발
당시만 해도 적기의 발견은 육안으로만 가능했다. 그래서 일본군의 진주만 공격 때 미군은 허무하게 당할 수 밖에 없었다. 미국은 멀리서 오는 적을 사전에 알 수 있는 레이더 개발을 시작했다. 제로센이 도착하기 전에 경로를 파악한 미군은 함재기를 발진시켜 제로센의 고도보다 더 높은 고공에서 구름 뒤에 숨어 대기한다. 제로센 전투기는 적군이 대기 사애인 줄도 모르고 미함대를 향해 공격을 시작한다. 이때 다가오는 적을 지켜보던 미군기는 급강하여 기총소사로 공격을 퍼붓기 시작한다. 고공에서의 공격을 예상치 못하고 일격을 당한 일본군은 무방비 상태로 전멸하게 된다.
2. 제로센 전투기의 취약점
아무리 급습당했다고 해도 적기와 비슷한 수의 공중전이면 전술 능력이 뛰어난 일본 전투기가 전멸까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제로센 전투기는 공격용 전투기로 방어 능력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당시 공중전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선제공격과 급선회하여 후방공격'을 해야 했기 때문에 제로센은 선회가 용이하도록 매우 가볍게 만들어졌다. 또 전신이 연료탱크 역활을 하도록 설계되어 있어, 적의 총알을 한 방만 맞아도 바로 동체에 불이 붙어 전멸을 피할 수 없었다.
3. 미국의 VT신관을 이용한 총탄 개발
당시 미군 조종사의 기총소사 능력은 부족했다. 연구에 돌입한 미국은 적기에 명중하지 않아도 표적에 근접하면 자동 폭발하는 총탄을 개발했다. 수많은 파편들은 제로센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 총탄은 전투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일본은 질 수 밖에 없는 전투를 시작하여 자멸하게 된 것이다. 이유를 짐작조차 하지 못한 채 충격적인 패전소식을 들은 일본 정부와 대본영은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곧 관계자 대책회의가 소집되었고, 왜 전투에서 질 수 밖에 없었는지 나름대로 분석을 끝낸 후 레이더를 만들어 장착하다던가, 제로센 전투기를 총탄에 맞아도 견딜 수 있게 철판을 보강하자는 등의 건설적인 이야기가 오갔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던 해군 겐다 중좌는 찬물을 끼얹어 버린다.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보니 참으로 참담하다. 어찌 그리 심약한 소리만 하는가. 레이더? 그깟 장난감이 얼마나 전투에 영향을 미치겠는가. 거기다가 총알을 맞으면 제로센이 격추되니 장갑을 두르자고? 그럼 제로센의 선회 능력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데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군인이 총알을 무서워하면 어떻게 전투를 치루는가. 비겁한 사람들 같으니! 약해 빠진 불평불만만 늘어놓지 말고, 보다 가볍고 보다 선회 능력이 뛰어난 전투기를 만들라. 또한 전투기들을 군인정신으로 무장하고 비행 능력을 더욱 갈고 닦아서 이 싸움에서 승리해야 하지 않겠나?"
공기를 읽을 줄 아는 민족답게 모두들 입을 다물었다. 결국 모처럼 대책회의에서 나온 의미있는 조언들은 모두 묵살되었다. 결국 일본군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전투에서 레이더를 이용하지도, 제로센 전투기를 개량하지 않은 채 패전을 맞이했다.
적기 발견이 중요하다는 것을 파악하고 레이더를 개발한 미군 vs. 오직 인간의 능력을 갈고 닦는 것을 중요시한 일본군
전투기의 핵심은 조종사이며 숙련된 조종사를 한 명 키우는 데는 최소한 2년이라는 시간과 수십억 원의 훈련비용이 든다는 것을 전제로 다소 전투 능력이 떨어지더라도 조종사를 보호하는 전투기, 한두 발의 총알로 발화되지 않는 전투기를 만들었던 미군과 오로지 훈련이 살 길이라며 애기(사랑하는 비행기)와 함께 장렬히 산화하는 것만이 군인의 길이라고 믿었던 일본군. 사격 능력이 부족해도 적당히 사격하면 적기 근처에서 폭팔하여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는 총탄을 개발한 미군과 사격 능력이 부족하다고 정신교육만 시키는 일본군과의 생각 차이는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왔다.
태평양전쟁에서의 일본군과 현대 일본인의 사고방식은 달라진 게 전혀 없다. 국민성은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조선 중기의 문신 유성룡이 임진왜란 동안에 경험한 사실을 기록한 《징비록》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달라진 게 없음에 개탄하게 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했다. 미국에 태평양전쟁 때 불나방처럼 덤벼들었던 일본군처럼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 기업경영자들이 일본 기업을 대상으로 사업을 할 때 숨을 고르고 다시 한 번 전략을 검토해야 한다.
작가인 염종순은 일본에서 30년 가까이 사업을 했으며, 와세대대학교와 국립사가대학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쳤다. 그는 산업화 시대에 한국이 일본을 따라가는 입장이었다면, 정보화 시대에는 일본이 한국을 따라간다고 통찰력을 발휘했다. 이후 그는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 부분에 걸친 선진 문화 노하우를 일본에 수출하는 사업에 전념했다. 이러한 바탕으로 한국인이 코더나 프로그래머가 아닌 기획자(프로젝트 매니저)로 가야, 일본으로 오는 동남아시아 및 아시아 지역권의 일류 대학 출신과 경쟁이 된다고 짚으면서 그는 한국 소프트웨어 기업의 일본 시장 진출을 적극 돕는데 나섰다. 위 구절은 제 2차 세계대전 태평양전역 미군과 일본군 사이의 국민성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러한 인식에서 물질적 기재로 실력을 향상시킨 쪽이 나은지, 아니면 정신적 수양으로 기술을 발휘한 쪽이 나은지 조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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