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민장(民長)들의 치재(治才)
조선 건국 455년(壬寅)에 일토산(一土山)7 사람 왕조명(汪兆銘)이 박(泊)8 땅의 민장(民長)이 되어 다스린 공적이 뒤어났다. 그는 곡식을 찧는 그릇을 만들고 백성으로 하여금 띠풀(芽草)을 뽑아 지붕을 이게 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편리하여 이 방법이 오래 전해졌다. 왕조명의 손자 해월(海月)도 민장이 되어 배를 만들어 곡식을 운반하게 하니 바다 무역이 트이게 되었다. 해월의 증손자 명지(明智)도 또한 민장이 되어 농사를 권장하고 독려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농사의 때를 어기지 않도록 했다.
김교헌 지음·고동영 옮김, 《신단민사》, 한뿌리(2006), 35쪽
대한제국 성균관 대사성이었던 무헌 김교헌이 지은 《신단민사》는 마고와 환인의 자손인 한민족 역사에서 '민장(民長)'이라는 기록을 드러낸다. 민장(民長)은 흡사 로마 공화국의 호민관(護民官) 제도를 연상케한다. 이때는 임인년으로 조선 건국 455년이라는데, 단군 기원으로 나타낸 것인지 서력 기원으로 나타난 것인지 아직 알 수 없다. 후자의 가능성이라면, 단군 기원이 무진년(戊辰年)인 서기 2333년에 시작된 것으로 보아 여기서 455년을 더하면 서기 2788년이 된다.
로마의 호민관은 트리부누스 플레비스(tribunus plebis)라 불리며, 선출된 권력인 집정관(Consul)과 달리 평민 계급에서 선출되는 지도자로서 초기에는 2명이었다가 후대로 가면 로마 공화국의 영역이 넓어지므로 10명으로 확대된다. 서기 2세기경, 이들 호민관 출신으로 로마 공화정을 개혁하고자 한 인물로 그라쿠스 형제가 있다.
위 기록에선 민장이 대를 이은 것으로 보이는데, 각 민장의 역활은 지대했다. 선대인 왕조명은 기술을 발전시켜 사물을 만들었다. 그 아들은 배로 설원으로 뒤덮인 북만주 눈강에서 배를 띄워 곡식을 날랐다. 증손자가 되는 해월은 얼어붙은 땅에서 농사를 권장하게 하고 농사의 때를 지키게 했다. 이와 같이 한민족 역사에서 민장들은 평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으로서 땅을 개척하며 중앙에 신속하였기에 기록을 남기며 대대로 이어졌다 할 수 있다.
어렵게 이뤄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우리는 간혹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역사에서 민주주의를 찾으려는 일을 하여, 서구의 학문에 치중되는 오류를 범하고 만다. 보다시피 우리 선조들의 역사서에서 민주주의 원형을 찾을 수 있다. 우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혁신과 발전을 이루는 밑거름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물론 회의로 중요하지만, 지도자가 되는 무리라면 능동적으로 사업을 일구는데 자신감과 자존감으로 나아간다면 필히 승리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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