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장 배달시대
1. 단군의 건국
무진(戊辰)년 10월에 백성들이 신인(神人)을 추대하여 대군주(大君主)로 삼고 나라 이름을 단(檀)1이라 하였다. 도읍을 태백산 아래에 정하였다가 23년을 지나서 경인(庚寅)년에 도읍을 평양으로 옮겼으며 국호를 조선(朝鮮)으로 고쳤다. 임술(壬戌)년에 홍수가 범람하여 평양이 잠겨 도읍을 또 당장경(唐藏京)으로 옮기며 홍수를 다스리니, 북은 흑수(黑水)로부터 남은 우수(牛首)에 이르러 동과 서는 대해(大海)에 닿도록 도로를 통하게 하여 백성들의 삶을 편하게 하였다.
2. 안팎에서 임금을 보좌함
비서갑(非西岬) 황후(皇后)는 베 짜는 것을 권하고, 태자 부루(夫婁)는 질그릇을 구워 기구(器具)를 갖추고, 아들 부소(扶蘇)는 약(藥)을 맛보아 병을 고치고, 아들 부우(扶虞)는 사냥을 맡아 짐승의 해를 물리치고, 아들 부여(夫餘)는 예(禮)를 맡아 풍속을 두텁게 하고, 원보(元輔) 팽우(彭虞)는 토지를 넓히고, 사관(士官) 신지(神誌)는 글을 만들고, 농관(農官) 고시(高矢)는 농사일을 다스리고, 약관(藥官) 지시(持提)는 노래와 춤을 어울리게 하였으며, 군장(君長) 여수기(女守己)와 상장(上長) 배천생(配天生)은 각기 백성들의 산업을 통제하고, 숙신씨(肅愼氏)는 활과 살을 만들고, 옥저(沃沮)는 도끼와 창을 만들었다.
3. 성을 쌓고 제단을 만들다
병인(丙寅)년에 세 아들에게 명을 내려 혈구(穴口)2에 산성(山城)을 쌓게 하므로 국방을 중요하게 여겼다. 또 평양에 도성(都城)을 쌓았는데 보기에 어마어마했다.
혈구는 바다에 있는 섬이며 성은 산 모양을 따라서 산봉우리 삼면을 둘러 서 있어 후에 사람들은 이를 삼랑성(三郞城)3이라 하였다. 평양의 옛 성터의 남은 흔적을 그곳 사람들이 손으로 모으니 이것을 사기(史記)에 왕검성(王儉城)이라 전하였다.
또 혈구 마니산(摩尼山)에 돌로 단(壇)4을 만들어 하늘에 제사하므로 근본을 잊지 않고 조상을 추모하여 제사하는 일을 행하였다.
4. 나라의 경계를 정함
중국의 임금 당요(唐堯)가 조선사람 우순(虞舜)을 예(禮)로 맞아 두 딸로써 아내를 삼게 하고 국정(國政)을 대신하게 하였다. 순(舜)이 조선의 서쪽 땅에 유주(幽州)·영주(營州)·병주(倂州)를 설치하고 중국 땅 아홉 주(九州)의 산과 유주·영주·병주 세 주의 산을 합하여 천하 열두 산(十二山)을 봉하였다고 말하였다.
조선이 이를 안 된다고 하여 갑술(甲戌)년에 조선은 태자 부루(扶婁)를 파견하고 중국은 수규(首揆) 하우(夏禹)를 파견하여 두 나라 접경지인 도산(塗山)에 모여 국경을 다시 정하니, 유주와 영주가 조선에 속하였다.
5. 사역(四域)과 군국(君國)
구이민족(九夷民族)이 살던 땅은 모두 조선 영토 안에 있었다. 동으로는 창해(滄海)에 이르고, 서쪽은 흥안령(興安嶺)을 끼고 사막에 뻗었고, 남으로 발해(渤海)에 이르고, 북으로 흑수(黑水)를 지나 소해(小海)에 닿으니, 땅의 너비가 만여 리가 되었다.
그 지역 안에 도기(都畿)5와 군국(君國)6을 두었는데 군국은 자기 산을 의지하여 물을 사이에 두고 지경을 나누고 스스로 이곳을 지키므로 서로 간섭이 없었으나 공물(貢物)이나 부과된 세금을 바치는 일은 매우 부지런하였다. 그 중 부여(夫餘)·숙신(肅愼)·옥저(沃沮)·맥(貊)·한(韓)이 가장 컸다.
6. 단군의 칭호
경자(庚子)년 3월에 단군이 아사달(구월산)에 들어가 다시 신(神)이 되어 하늘에 오르니 왕위에 있은 지 93년이며 세상에 있은 지는 무릇 217년이었다. 지금 아사달에 석대(石臺)가 아직 있어 단군어천대(檀君御天臺)라고 한다.
부루 임금의 다스림이 순수하고 아름다워 신령하고 상서로운 징조가 보였으며 봉황이 나타났다. 중국 사람들이 우러러 부러워하여 동방의 군자국(君子國)이라 하였다.
7. 민장(民長)들의 치재(治才)
조선 건국 455년(壬寅)에 일토산(一土山)7 사람 왕조명(汪兆銘)이 박(泊)8 땅의 민장(民長)이 되어 다스린 공적이 뒤어났다. 그는 곡식을 찧는 그릇을 만들고 백성으로 하여금 띠풀(芽草)을 뽑아 지붕을 이게 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편리하여 이 방법이 오래 전해졌다.
왕조명의 손자 해월(海月)도 민장이 되어 배를 만들어 곡식을 운반하게 하니 바다 무역이 트이게 되었다. 해월의 증손자 명지(明智)도 또한 민장이 되어 농사를 권장하고 독려하여 백성으로 하여금 농사의 때를 어기지 않도록 했다.
8. 예(濊) 사람들이 옮겨 삼
예의 군장(君長)이 은(殷) 나라 소을(小乙)이 쇠약해진 틈을 타서 서주(徐州)를 점령하고 양자강 연안에 토지를 넓게 개척하였다. 도읍을 옮기고 국호를 서(徐)라 하였으며 백성들을 그곳에 이주하시켜 많이 불어나게 하니 이는 우리 민족이 나라 밖에서 처음 활동한 일이다.
또 예 사람들의 한 갈래는 예수(濊水)9 동서로 거슬러 올라가며 옮겨 살았고 동북으로 흑수(黑水) 넘어 토지를 개척하니 이를 한예국(寒濊國)이라고 했다. 또 한 갈래는 남쪽으로 옮겨서 동해 연안에 마을을 이루니 동예(東濊)10와 불내예(不耐濊)11라는 이름이 있었다.
각주 1. 단(檀) - 방언은 배달(倍達).
각주 2. 혈구(穴口) - 지금의 강화도.
각주 3. 삼랑성(三郞城) -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 한다. 강화도 남부에 있는 옛 산성. 이 산에는 전등사가 있다.
각주 4. 단(壇) -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塹星壇).
각주 5. 도기(都畿) - 수도권.
각주 6. 군국(郡國) - 고을 나라.
각주 7. 일토산(一土山) - 지금의 평양 땅.
각주 8. 박(泊) - 구월산 밑의 바닷가
각주 9. 눈강(嫩江) - 나하
각주 10. 동예(東濊) - 지금의 강릉.
각주 11. 불내예(不耐濊) - 지금의 함흥.
#신단민사 #김교헌 #고동영 #민족실증사학 #정통사학 #단군 #동아시아 #민족사 #겨레 #나라 #뿌리 #근본 #정체성 #한국 #대한민국 #대한민국임시정부 #소프트파워 #독립운동 #독립전쟁 #독립지사 #대종교 #배달겨레
'역사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공지능(A.I.)로 복원한 고대 이집트의 현대화 복원도 (0) | 2023.04.16 |
---|---|
대한민국 민주주의 효시가 되는 '민장' 제도 (0) | 2023.03.12 |
《신단민사》 제 1편 상고(上古) - 제 1장 신시시대(神市時代) (2) | 2023.03.01 |
볼테르의 오페라 《중국 고아》에 삽입된 고려인 구절 (0) | 2023.02.23 |
《신단민사》 차례 (0) | 2023.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