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씨줄의 흐름
어릴 적 사회과부도에서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단군왕검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한 줄로 끝나곤 했다.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일이었다.
왜 단군이 신화로만 여겨질까?
왜 고조선은 곧바로 위만조선으로 넘어가 버릴까?
그 사이 수백 년의 시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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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料노트]
🗂 윤내현 『고조선 연구』
“고조선은 거수국(제후국) 구조를 가진 실재한 국가였다. 단군조선은 중심국이었고, 부여, 고죽, 예, 맥, 진번, 낙랑, 숙신 등이 주변 국가로 존재했다.”
고조선은 신화가 아니라,
고조선은 제국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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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줄의 확장
우리가 고조선을 떠올릴 때 ‘허황된 신화’라고 말하는 목소리는 어디에서 왔을까.
그 뿌리를 따라가 보면 일제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와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단군은 허구’, ‘한사군은 한반도 지배의 증거’라고 설정했고,
지금의 교과서와 학계는 그 골격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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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인용]
📘 『이덕일의 한국통사』 (다산초당, 2021)
“부여, 예, 맥, 진번, 낙랑 등은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다.
단군조선은 황제국적 구조를 이루었고, 숙신·옥저·조나 등은 제후국으로 편입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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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랑군은 평양이었는가?
이른바 ‘낙랑=평양설’은 여전히 다수 강단사학계의 정설로 간주된다.
그러나 북한과 남한의 일부 연구자들은 이 입장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 북한: 1962년 리지린의 박사학위 논문 『고조선연구』 이후, 낙랑군은 요동 료하 유역에 있었다고 주장
• 남한 민족사학: 하북성 노룡현에 조선현이 있었다는 사료 다수 확인
• 신흥 연구자: 섬서성 일대 고죽국 유적, 백이·숙제 묘소 등을 낙랑군의 초기 위치로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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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료비교]
📘 『한국통사』 64쪽
“명·청 시대의 영평부(현재 하북성 노룡현)에 옛 조선현이 존재했다는 중국 사료가 다수 존재한다.”
“고죽국과 숙신은 단순한 부족이 아니라 조선 문명권의 제후국이었으며, 이들의 묘소가 섬서성에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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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야, 사라진 제국인가?
가야는 삼국이 아니었다. 아니, 삼국에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약한 국가’라는 뜻은 아니다.
369년 야마토 왜가 임나를 설치했다면 가야는 그때 망했어야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에 따르면 이시품왕은 407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좌지왕, 취희왕이 이어받는다.
562년까지도 가야는 왕조를 유지한 독립된 정치체였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가야는 국가가 아닌 연맹체’라는 말에 길들여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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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줄 메모]
📘 『이덕일의 한국통사』
“562년 가야 부흥운동은 진압되었고, 이후 『삼국사기』에는 가야에 관한 기사가 사라진다.
그러나 일본서기에는 645년까지 임나가 존재한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즉, 《삼국유사》의 가야와 《일본서기》의 임나는 동일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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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줄과 날줄의 결론
고조선이 실재한 국가라면,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면,
가야가 왜 열도를 건너간 문명권이라면…
우리는 이제
역사의 씨줄과 날줄을 다시 짜야 한다.
신화가 아닌 실재로,
침묵이 아닌 복원으로,
수동이 아닌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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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한 책들
• 윤내현 『고조선 연구』
• 이덕일 『한국통사』
• 리지린 『고조선연구』
• 이용중 『식민사관과 역사 교과서』
• 이도상 『한국 고대사, 정립해야 할 세 가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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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 #낙랑군논쟁 #가야문명 #한국고대사 #식민사관청산 #윤내현 #이덕일 #티스토리블로그 #역사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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