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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마지막 부위, 광복의 군장이 되다』

해머슴 2025. 6. 25. 09:24

그림 1. 대한제국에서 한국광복군까지 황학수 장군의 생애

 

황학수 장군의 천로역정과 대일항전 분투기


🧭 1. 대한제국의 마지막 무장, 그 이름 ‘황학수’

1905년, 국권이 피탈되기 직전.
젊은 황학수는 대한제국 육군 무관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부위(副尉)의 관직을 부여받았다. 이는 지금의 소위에 해당하는 군 계급으로, 대한제국의 마지막 엘리트 군인이었다.

그러나 을사늑약과 군대 해산령(1907) 이후, 그의 군복은 벗겨졌고, 무기는 강제로 반납당했다.
그러나 그 순간부터 황학수의 ‘진짜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는 조국의 군인이 아닌 식민지 백성으로 전락한 현실에 저항하여, 스스로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 2. 천로역정, 망국의 길 위에서

만주로의 망명은 고난의 시작이었다.
황학수는 헤이룽장성 일대에서 의병 및 독립운동 세력과 교류하며, 무장투쟁의 길에 합류했다.
이후 상하이, 난징, 충칭 등을 전전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연결되었다.

“나는 조선의 군인이다. 황제의 명은 사라졌어도, 겨레의 명은 아직 살아있다.”
– 황학수 회고록 중에서

이 무렵 그는 자신이 배운 제국 육군 전술을 바탕으로 광복군 조직 훈련 및 교범 편찬, 정보전, 잠입 공작 등에 기여했다.


🔥 3. 광복군 장군, 조국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카드

1940년, 충칭에서 결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 직할 광복군.
황학수는 이곳에서 총사령부 참모장, 이어서 장군급 작전 지휘관으로서 활동했다.
그는 독립운동가이자 군 전략가로서, 국내 진공작전미군 OSS(전략사무국)와의 협력작전을 주도했다.

특히 1945년, 일본의 항복 직전까지 진행된 국내진공작전 계획(Operation Eagle)에서 그는

"내 발로 조국 땅을 밟고 싶다. 광복은 선언이 아니라 실천이어야 한다."
라고 말하며 실전 투입을 자청했다.


🕯️ 4. 해방 이후의 잊힌 영웅

하지만 해방 이후, 그는 국군 창설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되었다.
이승만 정권은 미군정에 협조한 친일 군인들을 등용했으며,
황학수 같은 독립운동 출신 장군들은 오히려 ‘이념의 위험군’으로 간주되었다.

그는 말년에 기록을 남기며 후학들을 길렀고,
오늘날에도 정식 군사서열이나 국가훈장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 5. 역사적 의미와 과제

황학수 장군의 삶은 단순한 ‘무장투쟁’의 서사가 아니다.
그는 망국 군인의 마지막 자존심이자,
자주 독립국가의 군대를 꿈꾼 선구자였다.

“광복은 정치로 온 것이 아니다. 싸움으로 온 것이다.”
– 광복군 출신 증언 中


📚 마무리 글귀

황학수 장군의 인생은 마치 존 번연의 『천로역정』처럼,
슬픔과 고난 속에서도 신념으로 길을 뚫고 나아간 인간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군복을 벗은 날부터 다시 진짜 군인이 되었고,
조국이 광복된 날에야 비로소 총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참된 군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그 정신을 되새기는 것입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이들 속에서만 살아 숨쉰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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