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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셔널 지오그래픽 유투브에서 본 한대(漢代) 만리장성과 훈족

해머슴 2023. 1. 14. 07:17
 

18분 51초부터 22분 25초까지 내용에서 발췌한 일부 자료다.

 

갈무리 사진 1. 서부의 만리장성 토축의 흔적

고비사막 근처 신장 위구르 자치구에 남은 만리장성의 흔적이다. 영상으로 미루어보아 드론으로 찰영한 것으로 보인다.

갈무리 사진 2. 캐나다 고고학자 앨런 마카의 설명이 이어진다

황토와 짚을 층층이 쌓아 성벽으로 구현했다. 이 구조물의 주체는 하화족이다. 캐나다 출신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 재단 후원을 받아 학술 연구를 하고 있는 고고학자 앨런 마카(Allan Maca)의 설명이 덧붙여진다.

갈무리 사진 3. 지푸라기를 가리키는 앨런

만리장성의 원형을 들여다보니, 그 안이 짚이 꽤 있다. 이 지푸라기를 자연 과학으로 분석하면, 위 성벽 구간의 축조 연대 또한 알아낼 수 있다고 본다.

갈무리 사진 4. 한족이 썻다는 청동 화살촉

위 사진은 한족이 썻다는 화살촉이다. 실제로 그들이 저런 유물을 과거에 썻는지 알 수 없다. 시시각각 막북(莫北;현대의 몽골 고원을 가리키는 말)에서 하화족을 위협하던 훈족 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 유목 제국은 규모가 상당하고, 고대 조선의 일파로서도 호전적이었다. 《환단고기》의 <단군세기>에도 이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제 4대 단군인 오사구가 재위 원년인 공동연대 이전 2137년에 자신의 아우 오사달을 ‘몽고리한’에 봉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30대 단군 내휴가 재위 기간 5년(공동연대 이전 905년)에 흉노가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과 32대 단군 추밀이 3년(공동연대 이전 847)에 선비산(鮮卑山)의 추장 문고가 공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훈족의 뿌리가 조선이라는 사실은 그 풍속에서도 나타난다. 훈족은 우리 한글에서 "훈훈하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따뜻하고도 정겨운 사람들'이라 풀이된다. 조선과 훈의 적대 세력이었던 한이 훈을 낮추고자 '흉악할 흉'에 '노예 노'를 써서 흉노(匈奴)라 한 것이다. 《사기》 흉노전은 그들의 풍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새해 정월에는 모든 장이 선우의 정(도읍)에 모여 작은 집회를 열고 제를 올린다. 5월에는 농성(하늘에 제를 올리는 장소)에서 대집회를 열고 하늘과 땅과 조상에게 제를 지낸다. 가을철에는 대림(초목의 풍성을 기원하는 제사장소)에서 큰 집회를 열고 백성들과 가축의 수를 조사한다.”

이러한 내용을 《삼국지》 <위지동이전>에 기록된 우리 겨레의 풍속과 비교해 보자.

“부여에서는 큰 정월에 하늘에 제를 올리고 국중대회를 여는데 이를 영고라 한다. 이때에는 형벌을 집행하지 않으며 모든 죄수를 석방한다.”

“마한은 5월에 곡식을 파종한 뒤에 조상께 제를 올리고 무리지어 가무와 음주를 밤낮으로 한다. 10월에 농사일이 끝나면 역시 이와 같이 한다.”

북부여와 남마한, 훈족의 풍속이 어디서 다른가? 이는 훈족이 단군 조선에 밑바탕을 두기에 찾을 수 있는 연결 고리인 것이다. 단군세기의 기록은 위 사료로도 증거된다. 훈족은 유목생활을 주로 하기에, 사람들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