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글

《신단민사》 서문

해머슴 2023. 2. 19. 19:59

소개글

이 책은 남북 강토인 반도 일각에 머물지 않고 배달겨레가 생겨나서 이어지고, 나뉘어졌다가 합해지고, 흥하였다가 왕조가 바뀌어가며 발전되어온 사정을 나누어 편술하고 있다. 단군민족의 후손인 나라인 요·금·원·청을 우리 역사에 포함시켜 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신단민족은 하늘의 자손, 단군의 후예를 말하며 그 역사를 기록한 것이 바로 신단민사다. 이 책은 우리 역사를 상고·중고·근고·근세로 나누고 남·북국시대를 기록한 국내 최초의 국사교과서이다. 그 가치는 민족의 고유한 정신과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풍속에 생생히 살아있는 생득적 역사를 밝힌 데 있다.


범례

- 이 책은 나라마다의 편년(編年)을 따져서 쓰지 않고 민족을 기준으로 하여 단군민족 전체를 망라하여 썼기 때문에 책 이름을 신단민사(神檀民史)라 한다.

- 이 책은 사담체(史談體)와 개화사체(開化史體)로 썼으며 한글과 한문을 함께 써서 읽기에 편하도록 했다.

- 이 책은 민족의 고유한 정신과 전해 내려오는 아름다운 풍속을 중요시하므로 신단민족의 가치를 밝혔다.

- 이 책은 원편·속편·증편·보편으로 나누어 우선 원편을 쓰고 나머지는 훗날 쓰기로 한다.

- 원편을 상고·중고·근고·근세 편으로 구분하였는데 각 편마다 시대·종교·제도·학예·풍속으로 나누었으며 또 이를 각 사항별로 제목을 달아 엮었다.

- 원편의 기사는 개천갑자(開天甲子)에서 시작하여 4351년 갑오경장까지로 하고 그 이후로 속편에 기록하기로 한다. 원편에서 빠졌다고 여겨지는 부분은 증편에, 원편과 속편에 다 쓰지 못한 것을 보편에 기록하기로 한다.

- 중고시대 이후는 국호가 바뀌고 국토가 늘고 준 일이 잦아 매우 복잡하므로 중고 편부터 시대의 맨 앞 절에 연대와 강역(彊域)이 나누어진 사실의 대강을 기록한다. 이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 중세 편 맨 처음부터 근세 편 맨 끝까지 행(行)수와 글자 수를 같게 했으며 상고편도 서로의 차이가 20자 이내로 하였다. 이는 독자들이 지루하여 읽지 않을까 하여 제한되었으나 사실에는 지장이 없다.

- 개천기년(開天紀年)을 간지(干支)에 분재하여 달(月) 수를 계선하지 않아 흔히 1년을 가산하는 일이 생겨, 아직 사가(史家)의 육간지편년(六干支編年)을 쫓고 뒤에 이를 바로잡을 생각이다.

개천 4380년(서기 1923년)

저자


추천사

이 신단민사는 무원(茂園) 김교헌(金敎獻) 선생이 지은 뛰어난 책이다. 선생의 깊고 넓은 학문은 모든 것을 바르고 깊게 살폈으니 당시에는 이에 관하여 선생을 따를 이가 없었다. 더욱이 동방의 역사에 오로지 힘을 쏟아 연구를 쉬지 않아 누구든지 그 한 마디 한 글자에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선생이 북만(北滿)에 있을 때는 이미 나라가 허물어졌고 예의는 짓밟힌 지 거의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그때 우리 겨레의 모든 것을 더할 수 없을 정도로 파산되어 남북강토에 남아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의 살림은 한 역사의 과거가 되고 있다. 또 우리 겨레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그 자취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비참한 시운(時運)에 이르렀다.

더구나 남쪽 백성들이 왜구에 쫓겨 고국을 등지고 이곳에 몰려들어 가시밭을 개간하고 자갈밭에 도랑을 파서 겨우 입에 풀칠하였다. 그러니 동포들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은 두 눈을 뜨고 차마 볼 수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민족문화의 근본 내력까지 희미하여 조상까지 잊을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 그 때의 현실이니, 인간의 도리가 한 구석에라도 남아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를 비통하고 두렵게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뿐 아니라, 악독한 원수들이 민족의 뿌리부터 말살하려고 우리 역사의 자취를 보고 듣지 못하게 했으며 드디어 엉뚱한 사설(邪設)과 위서(僞書)를 제멋대로 꾸며 우리의 정신을 바꿔놓으려 했다.

따라서 이 악독한 무리들이 날뛰는 모습이 날로 심하여 선생은 분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어 붓을 들어 겨레의 바른 자취를 밝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남쪽 강토인 반도 일각에 국한되지 않고 배달겨레가 생겨나서 이어지고, 나뉘어졌다가 합해지고, 흥하였다가 왕조가 바뀌며 발전되어온 사정을 나누어 편술하므로 남북만주에서 우리 자녀들 곧 중학생들을 가르칠 교재로 삼았다.

이 책은 세 시대로 크게 나누어 그 시대마다 흥하고 바뀌고 나뉘며 합한 것에 대하여 기록하였다. 또 단군 이후 각 왕조의 시작과 마침, 정치·종교·문화·풍속 등을 분리하여 기술하므로 한 눈에 밝히 이해되게끔 하였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되어 나라 밖에 있는 자유한국인사회(교포)에서 많이 읽혀졌다. 그러다가 교포들이 사는 지역이 점점 축소되고 그나마 유랑생활의 세월이 길어지고 갈수록 생활이 어려워져서 이 책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다행히 지난 해 8·15광복을 맞았다. 이에 신단후손이 다시 살 길이 열려 자연히 우리의 바른 역사가 시급히 나오기를 바라기에 이 귀중한 책을 다시 찍게 되었다. 누구든지 이 책을 자세히 읽어 우리의 유구한 사실을 잘 아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일이다.

이 책을 다시 펴내는 데는 오직 독지가 여러분들의 힘이 컸다. 또 부족한 나에게 머리말을 부탁하므로 반드시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 글을 쓴다.

선생이 쓴 이 배달민족의 역사는 소학생 교과서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간략하게 요점만 다시 따서 펴낸 것이다. 아울러 진단사승(震旦史乘)은 원고가 난리통에 없어진 것을 아직 찾지 못한 것이 유감임을 적어둔다.

개천 4403년 가을(서기 1946년)

조 완 구

※ 본 책은 한뿌리 출판사의 《신단민사》가 절판되어 그 원문을 찾기가 더욱 힘들어지고, 식민사학은 더욱 준동하기에 훗날 위키백과와 같은 집단 지성 공간에 올려 지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싶은 동기가 생겨 이렇게 블로그에다 기록해둔다.

※ 개천 4403년은 서기 1946년이다. 이 책에서는 개천 125년이 우리가 쓰고 있는 단기원년(BC 2333년)으로 쳤다.

※ 조완구(趙琬九)는 1881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독립운동가, 대한민국임시정부 재정부장을 지냈으며, 6·25때 납북됐다.

※ 위의 납북에 관해서 추신하자면, 남한에서는 북한이 민족 인사를 '납북'했다고 하지만 북한에서는 남한의 민족 인사를 '모시기 작전'으로 데려왔다고 풀이한다. 그 증거가 평양에 있는 민족 인사의 묘(혁명렬사릉)가 생년월일이 표시되어 참배의 성지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