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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3,000자 칼럼 — 《실위·고막해·토욕혼: 동북아 경계에서 태어난 숨은 주역들》

해머슴 2025. 12. 10. 09:40

동아시아 북방사를 읽다 보면 늘 눈에 잘 보이는 국가들이 있다.

흉노, 선비, 돌궐, 거란, 여진, 그리고 몽골.

하지만 그 거대한 이름들 사이에는 또 다른 흐름,

역사 교과서에 나타나지 않는 ‘경계민족(Frontier Peoples)’의 복잡한 계보가 얽혀 있다.



오늘 이야기할 실위·고막해·토욕혼은 바로 그 경계의 민족들이다.

이들은 단일한 국가나 단일한 혈통이 아니라,

부여·예맥·말갈·선비·몽골계가 뒤섞여 동북아 전체의 네트워크를 움직였던 종족군이었다.



1) 실위(室韋) — 몽골의 ‘보이지 않는 기원’



실위는 북방 초원과 만주 숲지대의 접경에서 활동한 복합 집단이었다.

중국 사서에는 “몽골의 한 갈래”로 기록되지만,

실위의 기원을 단순히 몽골계로 제한하기는 어렵다.



이들은 몽골계 요소, 부여·예맥계 요소가 복잡하게 결합했고

말 사육·활쏘기·수렵 문화가 발전하여 이후 몽골 기마술의 기반이 되었다.

부여·고구려계 유민과의 교류 흔적 또한 남아 있어

‘동이계 문화가 몽골 고원으로 확산되던 중요한 매개체’였다.



실위는 강력한 제국을 세우지 않았지만,

몽골 제국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인적·문화적 토양이었다.



2) 고막해(庫莫奚) — 동이적 색채가 강한 ‘거란의 형제 민족’



고막해는 선비계로 기록되지만

고고학과 인류학적 자료를 보면 동이적 성격이 훨씬 강하다.



만주 동북부의 산림·초원 경계에 자리 잡고

거란과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이들은 어느 때에는 거란의 동맹자였고,

어느 때에는 그들의 경쟁자였다.



고구려 멸망 뒤, 일부 유민이 고막해와 거란으로 흡수되었다는 기록은

만주 문화권 전체가 서로 연결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말 사육·수렵·교역의 복합경제를 운영한 고막해는

단순한 부족이 아니라

당·말갈·발해 사이에서 균형을 조절하던 지역 강자였다.



3) 토욕혼(吐谷渾) — 동이/부여계가 서방으로 뻗어간 장대한 서사



토욕혼은 만주에서 출발한 부여·선비계 복합집단이다.

이들은 내부 동요와 외부 압력 속에서 서쪽으로 이동했고

수천 km를 지나 청해(青海) 고원에 이르러 독자적인 왕국을 세웠다.



이들은 실크로드 동부의 관문을 장악하며

서역과 중원을 연결하는 강력한 교역국으로 성장했다.

유목·정착·교역이 결합된 독특한 사회 구조를 만들어냈고

당나라와 티베트와 긴장과 협상을 반복하며

‘동아시아-서역 경계 질서’를 조절하는 중견 강국으로 기능했다.



토욕혼은 한국 상고사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부여·예맥계 문화가 단순히 만주와 한반도에만 머문 것이 아니라

서역까지 영향을 확장했음을 보여주는 희귀한 사례이기 때문이다.



4) 왜 이 세 민족은 중요한가?



실위·고막해·토욕혼은 모두 ‘경계의 민족’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그들은 제국의 기록 속에서 주변부로 밀려나 있었지만,

실제로는 역사의 방향을 바꾼 동북아의 전략적 스위치였다.



실위는 몽골 제국 형성의 문화적 기반



고막해는 거란·발해·말갈·고구려의 동북아 질서를 연결한 중개자



토욕혼은 부여계 집단이 서역까지 전개한 확장의 증거





이 세 집단을 한 흐름으로 보면

동북아는 단편적인 민족사가 아니라

초원–산림–고원–서역을 잇는 대규모 인류 이동의 축이었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5) 결론: ‘중심’이 아닌 ‘경계’를 볼 때 역사가 보인다



우리는 흔히 강대국의 이름으로 역사를 배운다.

하지만 실위·고막해·토욕혼을 보면

동북아 고대사는 ‘국가 중심’보다 ‘네트워크 중심’으로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들은 제국이 아니었지만,

제국이 태어나는 토양을 만들었고,

문명이 이동하는 경로를 바꿨으며,

동아시아의 정체성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그렇기에 지금 다시 이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잊힌 경계의 역사와 인류의 이동성을 되찾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