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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한을 기록하는 자들 — 《원한의 서》와 《환단고기》, 세계관은 달라도 “기억”은 닮아 있다

해머슴 2025. 12. 24. 09:58



1️⃣ 드워프 왕의 책, 분노가 아니라 기억의 도서관

Warhammer Fantasy 세계관에서
드워프 최고왕 Thorgrim Grudgebearer는
전쟁에서 가장 무서운 무기를 들고 싸우지 않는다.
그가 늘 곁에 두는 것은 《Book of Grudges》다.
이 책은 단순한 ‘복수 명부’가 아니다.

배신
약속 파기
조약 위반
종족에 가해진 모욕

이 모든 것을 날짜·사건·책임자와 함께 기록한다.
드워프에게 복수는 감정이 아니라 행정이며,
원한은 분노가 아니라 공적 기록이다.
“기억하지 않는 원한은 이미 패배다.”

2️⃣ 기록은 왜 신성해지는가: 드워프의 법, 인간의 역사
드워프 사회에서 기록은 곧 법이다.

누군가 “이미 끝난 일”이라 말해도,
《원한의 서》에 남아 있다면 끝나지 않았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것이다.
기록은 현재를 지배한다.
누가 옳았는지,
누가 배신했는지,
누가 사라졌는지—
모두 기록이 정한다.

3️⃣ 현실의 책: 《환단고기》는 무엇을 기록하려 했는가

이 지점에서 우리는 현실의 한 논쟁적 텍스트를 떠올리게 된다.
바로 환단고기다.
특히 안경전이
번역·주해·해설한 상생출판 환단고기는
종교·역사·사상 논쟁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단순하다.

“지워진 역사가 있다.”
단군 이전의 상고사
동북아 문명의 주체성

‘문명 수용자’가 아닌 문명 생성자로서의 기억
이 역시 현재의 정체성을 둘러싼 기록 전쟁이다.

4️⃣ 《원한의 서》 vs 《환단고기》

판타지와 현실의 기묘한 평행선
항목
드워프 《원한의 서》
《환단고기》
목적
종족 존엄 보존
민족 정체성 복원
태도
감정 배제, 기록 중심
신화·역사 혼합
갈등
“지워진 원한”
“부정된 역사”
핵심 질문
누가 우리를 모욕했는가
우리는 누구였는가
중요한 점은 진위 여부 이전의 구조다.
두 텍스트 모두
“기억을 잃으면 존재도 잃는다”는 전제를 공유한다.

5️⃣ 왜 사람들은 이런 책에 끌리는가

현대 사회는 늘 이렇게 말한다.
“과거는 잊고 미래로 가자.”
그러나 공동체는 안다.
이름이 지워질 때
기원이 부정될 때
기억이 ‘신화’라며 조롱받을 때
사람들은 책을 만든다.
그리고 그 책은 종종 논란이 된다.
논란은 곧 기억 투쟁의 증거다.

6️⃣ 판타지는 왜 현실보다 정직한가

아이러니하게도
Warhammer Fantasy는 이렇게 말한다.
“기억을 기록하지 않는 종족은 멸망한다.”
현실의 역사 담론은 종종
정치·학계·권력의 언어로 포장되지만,
판타지는 직설적이다.

기억 = 생존
기록 = 무기
삭제 = 패배

✍️ 맺으며: 우리는 어떤 책을 남길 것인가

《원한의 서》는 분노의 책이 아니라
존엄의 장부다.
《환단고기》 또한
단순한 신앙 문서이기 이전에
기억을 되찾고자 하는 시도다.
동의하든, 비판하든
한 가지 질문만은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록하고, 무엇을 지우며 살아가고 있는가?”
그 질문을 던지는 순간,
이 두 책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