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자 김상태님이 정리한 대고조선론을 식민사학자의 소고조선론에 대비시켜 글로 정리한 내용
Kim, Sang Tae the Mathematician work on Greater Joseon Theory comparing to Minor Joseon in word format
대고조선론 VS. 소고조선론
By OKePaPa
| 업데이트 : 2024-02-17
대고조선론 vs. 소고조선론 논쟁은 무엇인가?
역사학계에서 고조선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갈림길이 되는 것이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의 차이인 것같다. 대고조선론(大古朝鮮論)은 고조선이 오래되고 큰 나라라고 주장하는 이론이고, 소고조선론(小古朝鮮論)은 고조선이 오래되지 않고 작은 나라라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이에 대해서 내가 접한 정보를 바탕으로 나름 정리해 본다.
목차
• 대한민국의 고대사 연구 상황
• 나의 어설픈 역사 인식의 새로운 시작
•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의 구분 기준
• 소고조선론 주장
• 소고조선론의 내용
• 소고조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 대고조선론 주장
•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 내용 요약
• ‘대고조선론’에 경끼하던 김상태님이 윤내현의 ‘대고조선론’에 빠진 사유
• 김봉렬님의 정리
• 낙랑은 중국 요서지역 남쪽에 있었다 – 심백강 박사
• 대고조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 대고조선론을 비판하는 사람들
• 마무리
대한민국의 고대사 연구 상황
나의 어설픈 역사 인식의 새로운 시작
그동안 어렴풋하게 우리나라 사학계의 주류 학자들은 여러 역사 이슈에 대해서 일본의 주장을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있다고 알고 있었다. 이번에 새롭게 관심 두고 알아보니, 고조선 역사를 해석하는 데도 현재 강단 사학의 주류에서 주장하는 학설과 강단사학 일부 비주류 및 재야사학계에서 주장하는 학설이 선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강단사학계(학교에서 강의하는 교수학계)는 이병도 교수를 뿌리로 하는 서울대 사학과 학맥의 교수들이 강단사학계의 주류를 이루고 있고 이들은 고조선의 역사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주로 소고조선론(小古朝鮮論)을 주장하고 있다. 한편, 강단사학의 비주류 일부와 재야사학계에서는 기존의 주류 사학계의 소고조선론은 잘못되어있다고 주장하고 있고, 고조선은 훨씬 더 오래되었고 더 큰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하는 대고조선론(大古朝鮮論)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사를 해석하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일제 침탈 시기의 만들어진 왜곡된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서 독자적이고 자주적인 역사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야 하고 그러한 새로운 역사 연구를 바탕으로 새롭게 정립된 역사를 바탕으로 보다 탄탄하고 정확한 역사를 정립하고, 잘못된 역사 내용이 확인된 것에 대해서는 수정하여 새로운 정사로 정립하고, 새롭게 정리된 역사를 일반 시민들과 새로운 세대에게 있는 그대로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현실은 주류 사학계는 아직도 일제시대의 역사관을 그대로 따르는 경향이 강한 상태이고, 그 기득권 카르텔이 너무 공고해서 기존 연구가 잘못된 것을 증명하는 새로운 연구 이론에 관해서 토론조차 제대로 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니 바른 역사를 정립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기존의 이론을 유지하는 데 급급하고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이론에 대해서는 소외시켜 버리는 상황이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역사 교과서에도 정확한 역사 보다는 기존의 이론을 유지하는 경향이 강하고 여러 측면에서 주류 강단 사학들의 이론들 위주로 실려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역사 교육이 과연 기존에 만들어진 주류 강단 사학자의 주장만을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이 괜찮은 것일까?
최근 관련해서 새롭게 관심이 생겨서 알아보다 보니 그동안 강단사학의 일부 비주류 학자나 재야 사학자들에 의해서 나름 많은 연구들이 이루어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일반 시민들에게는 거의 제대로 알려지지도 않고 있고, 역사학계에서는 기존의 강단 사학계의 세력은 너무 강력해서 전혀 다른 새로운 사학 연구 결과에 대해서 제대로 평가 및 논쟁이 되지 않고 사장되고 있는 상태라고 생각된다. 현재 사학계 자체의 생태계만으로는 과거에 만들어지고 공고화된 기존의 사학 이론 중에 잘못이 발견되어도 그 잘못을 고치고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사학연구 결과가 논쟁조차 제대로 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라 생각된다.
하지만 우리의 뿌리가 되는 역사가 이런식으로 다루어져서는 안될 것 같다. 역사 해석에 있어서 기존의 내용을 뒤집는 새로운 과학적인 연구 자료 및 이론이 제시되었다면, 당연히 공정한 논쟁의 장을 통해서 치열한 논쟁을 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역사학계의 심하게 기울어진 역학관계에 시민들의 관심이 추가되어 새로운 힘의 균형을 만들어 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생각을 실행하기 위해서 어떤 것을 해야 가장 효율적일까? 그 하나의 방법으로 현재 기득권 강단 사학자 주류들이 주장하고 있는 소고조선론에 대항하는 비주류 사학자 및 재야 사학자들이 연구해서 내놓고 있는 대고조선론에 대한 연구 자료들에 대해서 소개를 하고 서로 간에 정당하고 공정한 논쟁의 장으로 끌어 내는 방향으로 글을 작성해 보려 한다.
이러한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은 비교적 명확하고 단순해서 역사에 대한 지식이 그렇게 많지 않아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어느 것이 더 과학적이고 합리적인지 그리고 상식적이기까지 한 지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내용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이와 관련된 논쟁꺼리인 만리장성 동단(동쪽 끝) 위치 학설과 한사군의 낙랑군 위치 논쟁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한다.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의 구분 기준
이러한 이론들을 너무 세부적으로 살피면 개별 이론들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헷갈릴 수 있기에 최대한 단순화해서 큰 틀에서 크게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 식별하는 방향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어디서부터가 대고조선론(大古朝鮮論)이고 어디서부터가 소고조선론(小古朝鮮論)인지에 대해서 관련해서 많은 조사 검토를 해왔던 김상태 님 얘기하는 명확한 구분 기준에 대해서 살펴본다. 이것을 쉽고 명확하게 구분하는 방법은, 사학자에게 “중국 진시황의 진나라와 그 뒤를 이은 한나라 무제 시대의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어디로 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해보는 것이다. 이 질문에 대해서 ‘그때 만리장성 동단은 지금의 산해관(현 북경 근처 하북성 갈석산 부근)에 있었다.’ 하면 그는 대고조선론자이고, 반면 ‘그때 만리장성 동단은 최소한 요하(지금 산해관으로부터 수백 킬로 동쪽에 있는 요동반도 부근)에 있었다’라고 하면 그는 소고조선론자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한다. 학문적으로 세세히 따지면 정확히 이렇게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고조선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 간단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한다. 그 위치 판단 기준 시기를 ‘진시황과 한나라 무제 시기’로 특정해서 만리장성의 동단이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말해보라고 하면 명확해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고조선론과 소고조선론을 나누는 기준으로 만리장성 동단설 이상의 선명함을 주는 것이 낙랑군의 위치이다. 당시 낙랑군의 위치가 한반도 평양에 있었다고 주장하면 그는 소고조선론자이고, 그게 아니라 한반도 바깥 만주의 어딘가에 있었다고 하면 그는 대고조선론자로 보면 된다.
대고조선론/소고조선론 구분의 기준
대고조선론(大古朝鮮論)
: 당시 ‘만리장성의 동단‘은 현 산해관(현 북경 근처의 하북성 갈석산 부근)이고 따라서 ‘한사군의 낙랑군‘은 한반도 밖 만주 어딘가에 있었다.
소고조선론(小古朝鮮論)
: 당시 ‘만리장성의 동단‘은 현재의 요하(지금 산해관으로부터 수백 킬로 동쪽에 있는 요동반도 부근)에 있었고 ‘한사군의 낙랑군‘은 한반도의 평양에 있었다.
소고조선론 주장
소고조선론의 내용
소고조선론은 대부분 익히 알고 있다. 간단하다. 그동안 우리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이 대부분 소고조선론의 주장에 가깝다고 보면 된다. 고조선 이야기는 대부분 신화와 같은 황당한 이야기들이고 실제로는 국가형태로 제대고 갖추지 못한 실체가 명확하지 않은 실제 역사는 얼마 길지도 않고 문화는 보잘 것 없고, 한반도 북쪽이나 만주 어딘가의 작은 지역에 있다가 사라진 나라라는 흐름의 내용이다. 우리는 일본에 의해 일제 강점기 때 왜곡되었던 고조선 역사를 지금도 거의 그대로 배우고 있고 그렇게 알고 있다.
참고로 아래 링크에 보면 최신 업데이트 된 소고조선론 주장 교수들 주장이 정리되어 있다. 윤내현의 ‘한국 고대사 신론(1986)’ 논문집 발표 이후 고조선 활동 영역에 대한 명확한 사료 증거에 밀려서, 주류학계 일부에서 ‘고조선 중심지 이동설(1988서영수, 1990노태돈)’ 등이 추가되어 고조선 활동 영역이 조금 넓어진듯 하지만 여전히 낙랑군 한반도 평양설을 지켜내는 역할을 할 뿐 큰 틀은 소고조선론으로 변함이 없어 보인다. (참고로 아래의 “인문학 프로파일” 유튜브 채널 크리에이터는 나름대로 강단 주류 사학계 학자들와 비주류 학자들을 분류하고 있는데, 해당 학자에 대한 평가 내용이 김상태 님의 관점이나 연구 가치나 비중 및 평가와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된다)
참고 링크 : 고조선 영토, 학자별 총정리 (1부)
소고조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소고조선론을 주장하는 대표적인 그룹은 소위 “강단 주류 사학계“라고 불리우며 “소고조선론“을 펴는 서울대 사학과의 학맥을 이루는 그룹(이병도-김철준-노태돈-송호정 교수 계보)인 것 같다.
이병도(1896~1989)교수는 일본 와세다 대학 사학과를 졸업하고 일제 시대에 일본의 조선사 편수회에 참여 하였고, 학도출진 대명을 받들라는 기사를 쓰기도 했다고 친일인명사전에 오른 사람인데, 해방후에도 서울대 교수로 국사편찬위원장으로 문교부 장관 학술원장으로 활동을 하며 서울대 학파의 뿌리를 다진 인물이다. ‘고조선사’, ‘한사군론 완비’ 등의 책을 통해 소고조선론의 기반을 만들었다. 송호정 교수는 서울대 출신 박사로 고조선 연구로 학위를 받은 첫번째 인물이다. 즉 이전까지는 주류 강단 사학계에서는 조선사 연구가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방 이후 50여년 동안 강단 주류 사학계에서는 고조선 연구를 거의 하지 않고 있다가, 송호정이 박사학위 받을 때(1999년) 처음 연구가 되었다는 의미가 된다. (이는 기존의 강단사학계의 소고조선론 이론을 깨는 윤내현의 ‘한국 고대사 신론(1986)’ 논문집과 ‘고조선 연구(1994)’ 연구서가 나온 이후 부랴부랴 강단사학계 측에서 송호정이 ‘고조선 국가 형성 과정 연구(1999)’ 라는 고조선 논문으로 처음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선후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015년 결성된 ‘젊은역사학자 모임’ 소속의 기경량(1978~)(서울대박사,카대 국사학과조교수)교수 등도 소고조선론 주장측에서 이론을 펴고 있다.
또한, 김상태 님은 “고조선 논쟁과 한국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서강대 사학과 출신의 초록불 이문영씨를 소고조선론 진영의 재야사학자로 설명하고 있다.
대고조선론 주장
대고조선론은 오래전부터 다양한 주장이 있어왔다. 하지만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이 주장하기도 하고, 독재정권에 협력하던 사람이 주장하기도 하고, 신화 수준의 황당한 주장을 하는 이들도 많이 있다 보니, 대고조선론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상이 많았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에는 학술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통한 책이나 논문들이 많이 나오면서 신뢰를 회복하고 있다.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 내용 요약
윤내현의 30여년 동안 고조선과 관련된 연구와 저술활동을 했다. 그 첫번째 매듭이 개별적인 논문을 모아서 1986년에 출간한 논문집인 “한국 고대사 신론(1986)(개정판 2017년)”이다. 그리고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는 1994년에 출판된 책(2015년 상/하권으로 개정판이 나왔다)으로 900여 쪽의 고조선에 대한 연구서이다.
윤내현에 의하면 고조선은 기원전 2400년 전후 한반도의 평양부근에서 건국되었다. 그가 제시한 첨단의 인류학적, 고고학적 성과에 따르면 이 시기 만주와 한반도는 이미 부족 사회와 추장 사회를 넘어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문명 단계에 이르렀다. 이후 고조선은 긴 시간 동안 한반도와 만주 전체로 영토와 지배권을 넓혔고 기원전 1500년경에는 만주와 한반도 전체에 걸쳐 동일한 형태의 비파형 동검 문화를 이룩했다. 이 동검 문화는 현 만리장성 이남의 중국의 동검과 확연한 차이를 보이며, 만주 북서쪽 초원의 북방형 동검과도 명확한 차이를 보인다. 이 방대한 국가 고조선은 그러나 로마제국 같은 형태의 국가는 아니였다. 여러 읍과 나라들의 중층적 지역적 연합으로 이루어진 읍제국가로, 유사한 나라로는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중국의 은나라가 있다. 은나라에 대한 가장 유명한 연구자는 장광직 교수인데, 윤내현이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하던 시절에 그와 교류한 바 있고, 장광직의 이론들을 비판적으로 참고 했다. 한편 기원전 12세기경 은나라가 멸망한 후 은나라의 충신 ‘기자‘가 난을 피해 연나라와 고조선의 접견지역, 곧 지금의 산해관 근처로 이동하여 거주하였는데 그 후손은 나중에 고조선으로 넘어가 고조선의 제후 중 하나가 된다. 이것이 기자 조선이다. 이 기자의 내막을 연구한 윤내현의 논문 “기자신고(1983)”는 윤내현의 모든 연구 중에서도 으뜸에 속하는 논문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논문 검색을 해보니 무슨 사유인지 “발행기관의 요청으로 이용이 불가한 자료” 라고 나온다. 이 논문에 대해서는 김상태 님의 책 소개글에 언급되어 있다.)
이러한 고조선은 기원전 4세기 전후 중국이 전국 시대로 접어 들면서 중대한 변화를 맞이한다. 전대 미문의 중국 내부 영토 전쟁이 평화롭던 중국 동북방의 고조선에까지 파급된 것이다. 가장 가까이 접하고 있던 전국 시대 중국 연나라와 교류 및 충돌이 늘어나는 한 편 중국으로부터 난민 유입도 많아졌다. 위만조선은 이 난민 중에 한 세력이 고조선에 정착하고 복속했다가 나중에 제후국의 제후가 된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기존의 기자조선의 백성이 되었다가 반란을 일으켜 기자조선을 빼앗고 위만조선이 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원전 2세기 말 고조선 서남단 제후국인 위만조선은 전국 시대를 통일한 진시황의 진나라를 이어받아 팽창일로에 있던 한나라 무제와 대규모 전쟁에 돌입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고조선의 일부였던 위만조선이 멸망한 것이다. 한나라는 그 일부의 고조선 영토에 낙랑군을 포함한 한사군을 설치했으며 그 영역은 현재 산해관에서 요동반도 이서에 이르는 것으로 한사군이 한반도 내부에는 존재한 적이 없다.
그러나 고조선은 이 무렵부터 쇠퇴했고 대신 고조선 내부의 여러 세력과 제후집단이 독립하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진국, 삼한과 같은 나라들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고조선 왕가라 할 수 있는 중심 국가는 오래 지속되었다. 중국의 주나라와 비슷한 경우이다. 주나라는 춘추 시대에 실권을 잃었음에도 주나라 종주국으로서 작은 영토를 지키며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했다. 그처럼 고조선 본가도 서기 후까지 오래 지속되었으며 삼국사기 등의 사료해석에 따르면 그 위치는 지금의 평양부근이었다.
즉 기원전 2400년경부터 아주 넓은 영토에 대한 지배력을 가지며 서기후까지 아주 오래도록 국가를 유지했다는 얘기이다. 즉 대고조선론을 얘기하고 있다.
이러한 윤내현의 고조선 개요는 다른 모든 고조선 이론, 수백 수천 가지에 이른다는 강단 사학계와 재야사학계, 인터넷 논객 모두를 아우르는 온갖 이론들을 효과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윤내현의 고조선 개요는 모든 고조선 이론의 유일한 원점 좌표이다. 그럼 왜 윤내현의 이론만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간단하다. 윤내현만이 고조선에 관한 전 기간, 전 방향에 걸쳐 총체적이고 일관된 과학적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외 다른 어떤 이론도 이와같은 총체성과 일관성과 과학성을 갖지 못한다. (김상태 님의 판단-책 ‘고조선과 21세기…‘를 읽으면서 설득되었다)
‘대고조선론’에 경끼하던 김상태님이 윤내현의 ‘대고조선론’에 빠진 사유
취미가 독서였던 김상태 님이 윤내현의 저서를 읽게 된 사연은 다음과 같다. 10년도 훨씬 전에 역사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데, 그 시작은 아이러니하게도 송호정 교수가 쓴 “단군, 만들어진 신화”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부터였다고 한다. 표지에 적힌 저자 소개를 봤더니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고조선 국가 형성 과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라 쓰여 있었고, 맨 앞 서문 중에는 ‘일반인들의 혼란된 이해를 바로잡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문장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책을 읽어 본 느낌은 일반인의 혼돈을 바로 잡기는커녕 혼돈이 더 커졌고, 그래서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서 고조선 서적을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책이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1994)(개정판2015)”와 “한국 고대사 신론(1986)(개정판2017)”이었다고 한다. 책을 보는 즉시 충격에 휩싸였고, 서울대 수학과 출신인 김상태 님은 그때부터 두 권의 책을 수학 공부하듯 샅샅이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읽고 나서 두 책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첫째, 윤내현은 철저하고 완전한 학술 논문을, 성실하기만 하면 나 같은 일반 대중도 분명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서술했다.
둘째, 그 학술적 내용이 논거와 논리 전개에 있어서 너무도 완벽했다.
세째, 문체에서 드러나는 그 품격이 한없이 온건하고 은은했으며 그러면서도 치밀하고 집요했다.
하지만, 이러한 김상태 님도 윤내현을 모르던 시절에는 ‘대고조선론’ 단어만 나오면 경끼를 했었다고 한다. 이유는 대고조선론을 제창하는 주요 인사 중에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친일파 인사들이 있었고, 사이비 국수주의 운동의 선봉에 서서 5공 정권과 유착하는 경우도 있었고, ‘환단고기’라는 신화도 무색할 이야기가 남발되기도 했고, 이들의 언행이 지나치게 공격적이고 대화 불가능한 우격다짐을 벌이며 극단적 민족주의와 국수주의를 표방하고 오만과 자족감에 차 있다고 느껴졌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김봉렬님의 정리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고조선의 서쪽 강역을 알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사료이다. 현재 중국은 공식 간행된 『중국역사지도집』에서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하고 있다. 진제국의 영토가 한반도 평양까지 이르렀다는 주장이다. 중국이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는 『태강지리지』‧『진서지리지』‧『통전』의 관련기록을 검토하여 중국측의 주장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역사왜곡인지 살펴보고, 진나라 만리장성 동단의 올바른 위치를 밝히려고 한다
『중국역사지도집』이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일대로 표기한 것은 일제 식민사학자 이나바 이와기치(槄葉岩吉)와 중국학자 왕국량王國良 등의 연구 성과를 종합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위의 사료들을 가지고 진장성의 동단을 한반도 평양 일대로 해석하는 것이 옳은지 살펴보기로 한다.
현재 위의 사료들을 가지고 진장성의 동단을 비정하는데 있어서 크게 세 가지 학설이 대립하고 있다(<그림 2> 참조). 첫째는 진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보정시 수성遂城 일대라는 설로 필자와 심백강 등 일부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최신의 견해이다. 둘째는 진장성의 동단이 현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산해관 갈석산 일대)라는 설로 윤내현과 이덕일 등 다수의 재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견해이다. 셋째는 진장성의 동단이 현 한반도 평양 일대라는 설로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일본과 중국 사학계의 통설이다. 과연 어느 주장이 옳은지 위의 각 사료들을 하나씩 검토보기로 한다.(계속)
<관련한 글의 세부 내용 링크>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어디인가? <제1회 들어가는 글>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어디인가? <제2회 태강지리지의 관련기록 검토>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어디인가? <제3회 진서지리지의 사료 검토>
진나라 만리장성의 동단은 어디인가? <제4회 통전의 기록 검토>
낙랑은 중국 요서지역 남쪽에 있었다 – 심백강 박사
기원전 108년 한 무제가 고조선을 침략하여 설치한 한사군의 하나인 낙랑의 위치가 어디였는가는 우리 고대사의 큰 쟁점 중 하나다. 고조선과 고구려 강역을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역사 갈등’의 한 진원지이기도 하다.
국내 사학계의 통설은 대동강 유역설이다. 이른바 강단사학으로 불리는 이병도·이기백·노태돈의 입장이다. 이에 맞서 이른바 민족사학으로 묶이는 학자들의 견해는 요동설(신채호), 요서설(정인보·리지린·윤내현)이다.
20년 동안 고조선과 고구려 강역 연구를 해온 재야 역사학자 심백강(역사학 박사) 민족문화연구원 원장은 최근 펴낸 책 <사고전서 자료로 보는 한사군의 낙랑>(바른역사)에서 민족사학의 요서(랴오허 서쪽)설에서 더 서쪽으로 나아간다.
(후략 — 관련 링크 참조)
대고조선론을 주장하는 사람들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 정인보(1893~1950), 윤내현(1939~)교수, 복기대(1963~)교수, 신용하(1937~) 교수, 심백강 박사 등 강단 사학의 비주류 학자 및 재야사학자들이 사료 분석과 과학적 검증을 통해 대고조선론 이론을 강화하고 있다. 훨씬 많은 재야사학자들이 있지만 기존의 강단사학 주류 사학자들의 카르텔을 깰 수 있는 비록 비주류이지만 강단사학에서 대고조선론을 학술적으로 강화하느라 고군분투하고 있는 사학자 위주로 소개를 해본다. 강단사학을 정상화 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중요 과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강단 사학에서 대고조선론을 연구하는 사학자들은 작은 빈틈이라도 보이면 가차없이 시련을 겪게 되는 어려운 생태계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김상태 님은 ‘고조선과 21세기 영실평원의 독사들‘이라는 책을 통해서 대고조선론을 학술적으로 확장시키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설명하고 있는 대고조선론의 사학자들(신채호, 정인보, 윤내현, 복기대, 신용하 등)의 시련과 왜 이들이 고대사 학계의 소중한 인물인 지에 대해서 따로 정리해 보려 한다.
추가로, 김상태 님은 “고조선 논쟁과 한국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김종서 박사와 심백강 박사에 대해서 대고조선론자로 설명하고 있는데, 박사학위를 갖고는 있지만 관련해서 통상적인 학술 논문은 쓰지 않고, 자기 식으로 연구(고대 사료분석)하여 책을 쓰거나 강의를 할 뿐이라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은 재야사학자로 분류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두 분은 2016년 동북아역사재단에서 열린 제2회 상고사토론회 대고조선론측 대표로 토론에 참석했었는데, 이들은 고고학에 훈련되어 있지 않았고, 자신들이 다루는 사료를 비판적으로 고찰하지 않았고 그런 토론에도 익숙치 않아 주류 고대사학계 토론자에게 많이 밀렸던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유명 역사학자 이덕일 박사에 대해서도 언급을 한다. 한때 이덕일을 좋아했고 기대도 많이 했으나 결국은 정통 대고조선론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고 김상태 님은 판단한 것 같다. 그가 주류 고대사학계와 싸워 큰 성과를 냈었고, 최근에는 절판된 윤내현의 책들을 재출간하는 중요한 일을 했고, 심지어 윤내현이 2015년 병환 중 인터뷰에서 이덕일에 기대를 표했다고 하더라도 학자는 오로지 논문으로 말해야 하며, 그것이 합당하지 않으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 것 같다. 구체적인 내용은 생략한다.
대고조선론을 비판하는 사람들
고대사를 둘러싼 총체적인 모순과 갈등
신채호 이후 ‘대고조선론’과 ‘한사군 한반도 부재론’은 주류 고대사학계에서 비과학적이고 비실증적인 이론으로 치부되어 왔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류 고대사학계의 위와 같은 입장은 학문으로 전혀 검증된 바 없으며 심지어 변변한 논문 하나조차 제출된 적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 고대사학계의 입장이 정론화되어 있고, 이 황당한 사실 자체가 폭로된 적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기묘한 일이다. 이는 단순히 역사학이라는 학문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한국 고대사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모순과 갈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 책은 모순과 갈등의 이면을 명확히 묘사하고 있다. –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2012)‘ 책 소개 내용중
‘대고조선론’에 대한 진보사학자들의 비과학적 비판
‘대고조선론’을 부정하는 첫 번째 이론가들은 다름 아닌 진보사학자들인데, 대표적으로 강만길, 이이화, 박노자를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신채호 이후 대고조선론을 민족주의에 따른 과장과 비과학적인 억측으로 구성된 이론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고조선과 관련된 고대사학 전문가들이 아니며, 그에 대한 논문을 쓴 적도, 연구를 진행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근거 없이 ‘대고조선론’을 비판하고 있다는 사실은 과학을 주장해야 할 이들이 가장 비과학적인 입론을 제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했고 또한 긴 시간 동안 그대로 유지될 수 있었는지, 이에 대한 단순하고 명료한 증명과 비판이 펼쳐진다. –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2012)’ 책 소개 내용중
주류 고대사학계와 진보사학계, 그 알 수 없는 동맹
이에 대해서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단 관점이다. “고조선과 21세기…(2021)” 책에서 김상태 님이 그동안 벌어진 상황을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정말로 뜻밖이다. 일반적으로 대고조선론을 펴고 있다고 생각되는 진보사학계가 진보사학계의 총화이고 대중성을 확보하고 있는 잡지 “역사비평”을 통해서 소고조선론을 펴는 주류 고대사학계와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설명은 충격적이다. 세부적인 내용은 생략한다.
대고조선론자인지 소고조선론자인지 모르겠다는 인물
김상태 님은 “고조선 논쟁과 한국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윤내현이 표절자라는 논문을 쓴 이형구에 대해 서영수와 같은 중심지 이동설 소고선론자로 보는데 본인은 다르게 얘기하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홍산문명(요하문명) 연구자로 유명한 우실하에 대해서 언급한다. 우실하의 책 “전통문화의 구성원리”의 내용을 보면 상당히 강경한 소고조선론자로 보이는데, 많은 대중들은 그가 소고조선론자라는 사실을 모른다고 말한다. (물론 이런 분류는 김상태 님의 판단 기준에 의한 것이다)
마무리
최근 들어서 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한 역사 왜곡이 점점 심해지는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이러한 중국 동북공정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역사를 축소하고 왜소하게 해석하려고만 한다. 그로 인해서 중국의 동북공정을 오히려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빌미를 주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참으로 무책임하다.
기존의 강단 사학 주류 사학자들이 고수하고 있는 소고조선론은 많은 모순이 있고 잘못된 것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른 많은 학자의 연구와 사료의 증거 자료와 논문을 통해서 제시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주류 학계에서는 그러한 결과에 대해 무시로 일관하고 있는 것 같다.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증거 자료를 바탕으로 반대 이론이 나왔다면, 그러한 반대 이론(논문)에 대한 제대로 된 반박을 하며 진실을 찾아가는 것이 학자들의 소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지 못하고 기존 자신의 이론을 사수하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이론에 문제가 있음을 자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고조선 역사는 우리나라의 문화와 전통의 시발점이 되는 중요한 역사이다. 사실에 입각한 연구 결과물에 대한 제대로 된 평가와 논쟁을 통해서, 잘못된 것이 있다면 수정하여 바른 역사를 정립하는 것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단 사학자들에게 맡기기만 해서는 기득권 사학자들의 힘이 너무 강해서 잘 개선이 안 되는 것 같다. 더 많은 시민들이 이러한 역사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을 두고 지켜보고, 민주주의 선거의 힘을 통해서 바른 역사 연구를 지원하겠다는 정치인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 과학적인 연구 활동을 적극 지원할 수 있도록 해서 기득권 사학자들이 더 이상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외면하고 부정할 수 없도록 일반 시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투표 행동을 통해서 힘을 보태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공감되는 김상태님의 결론>
“가장 중요한 건 우리 같은 평범한 독자들이 학문과 학자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학자가 살고 학문이 산다. 한국 고대사학도 진보사학도 마찬가지다. 그 밖의 어떤 분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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