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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기원은 언제부터 질문될 수 있는가

해머슴 2025. 12. 14. 11:00

— 초고대문명 담론을 둘러싼 국제적 논의와 한국적 수용

문명의 기원은 오랫동안 하나의 연대기로 정리되어 왔다. 인류는 수렵과 채집의 단계를 거쳐 농경 사회로 진입했고, 이후 도시와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설명은 교과서적 서술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국제 고고학과 인문학 분야에서는 이 연대 체계가 과연 모든 자료를 충분히 설명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주로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이른바 고고학 선진국에서 먼저 나타났다. 고고학뿐 아니라 지질학, 기후학, 천문학, 신화학 등을 함께 검토하는 학제 간 연구를 통해, 빙하기 말기 인류 사회의 구조와 지식 수준이 기존 통설보다 더 복합적이었을 가능성이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영국 바스(Bath)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된 비정통 학제 네트워크와, 스코틀랜드 출신 저술가 그레이엄 핸콕(Graham Hancock)의 작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대중 담론 차원에서 소개한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이들의 작업은 특정 결론을 단정하기보다, 문명 형성의 시점과 방식에 대해 기존 설명이 충분히 포괄하지 못한 영역이 있는지를 질문하는 데 초점을 둔다. 괴베클리 테페와 같은 유적에 대한 재해석이나, 빙하기 말 대규모 환경 변화에 대한 관심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다.

중요한 점은, 이 흐름이 학계 주류와 대립하는 하나의 ‘정답 주장’이 아니라, 기존 연구 틀을 보완하거나 재검토하려는 질문의 형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국제 학계에서도 이러한 시도는 지속적인 검증과 비판의 대상이며, 동시에 새로운 연구 설계를 자극하는 계기로 기능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제적 담론은 한국에서도 고유한 방식으로 수용되어 왔다. 일부는 상고 문헌과 고대 서사에 대한 재독해로 이어졌고, 일부는 문명 순환이나 역사 인식의 틀에 대한 철학적 사유로 발전하였다. 흔히 환단학파나 증산학파로 불리는 흐름은 이러한 맥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여기에 더해, 비교적 학술적 언어를 통해 접근을 시도해 온 흐름으로 동이학파(Dongyi Scholars)를 들 수 있다. 동이학파는 ‘동이(東夷)’라는 고대 명칭을 민족적·정치적 범주로 단정하기보다, 동북아 고대 사회를 구성했던 문화권과 교류 네트워크의 개념으로 재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여 왔다.

이들은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동이 관련 기록, 요하·산동·한반도 일대의 고고학 자료, 언어·인류학적 연구 성과를 종합하여, 고대 동북아 문명이 단선적인 중심-주변 구조가 아니라 다핵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었을 가능성을 검토한다. 이러한 접근은 특정 문명을 우월하거나 중심에 두기보다, 문명 형성의 과정을 보다 넓은 시야에서 이해하려는 시도로 평가할 수 있다.

동이학파의 문제의식은 국제적으로 논의되는 초고대문명 담론과도 일정한 접점을 가진다. 문명의 기원을 단일 지역이나 단일 시점으로 환원하기보다, 장기간에 걸친 교류와 축적의 결과로 바라보려는 태도는 공통된 특징이다. 다만 이 역시 가설과 해석의 영역에 속하며, 지속적인 자료 검토와 비판적 검증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학술적 긴장 관계를 유지한다.

환단학파, 증산학파, 동이학파로 불리는 여러 흐름은 서로 동일하지 않으며, 접근 방식과 관심 주제 또한 다르다. 그러나 이들을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공식 사관이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사유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는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틀에 대한 문제에 가깝다.

결국 초고대문명 담론이 던지는 핵심은 문명이 언제 시작되었는가라는 단순한 연대 논쟁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문명을 설명하는 방식, 역사 서술이 전제하는 시간의 깊이, 그리고 지식의 경계가 어디까지 열려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다. 질문은 언제나 불완전하지만, 질문이 사라질 때 연구도 함께 멈춘다.

본 글은 특정 사관이나 결론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국제 고고학과 인문학에서 제기된 문제의식과, 그것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다양하게 해석·수용되어 왔는지를 정리하는 데 목적이 있다. 초고대문명 담론은 여전히 진행 중인 질문이며, 그 의미는 단정이 아니라 검토와 대화를 통해 축적될 것이다.

본 글은 종교·정치·사회 정의에 대한 가치 판단을 배제하고, 국제 및 한국 인문학 담론의 형성과 수용 과정을 설명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