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체로키와 ‘아메리카 대조선’ – 억눌린 기억의 상상체 혹은 진실?
미국 원주민 5대 부족 중 하나인 체로키(Cherokee)는 미합중국 역사에서 독특한 지위를 갖는다. 그들은 연방 인디언 법률 체계 내에서도 ‘독립된 조약 체결 권리’와 ‘주 경계 내 자치 영토’를 갖고 있었으며, 19세기 초 Trail of Tears라는 강제 이주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민간에서는 체로키 부족 중 일부 상징 문양이 한반도의 청동기 유물 혹은 고조선 무늬 토기와 유사하다는 주장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이를 근거로 일부에서는 ‘아메리카 대조선’ 또는 ‘사념체적 조선’이 존재했다’는 상상적 가설도 존재한다.
이러한 가설은 여전히 공식 역사학계에서는 비판적 검토 대상이지만, 이민사적 맥락에서 ‘숨겨진 문화 접촉의 가능성’이라는 문제의식은 남는다.
👑 2. 고종황제의 내탕금과 상하이 임시정부의 연결고리
근세 말기, 대한제국의 고종황제는 한일합방 이전까지 황실 재정(內帑金)을 통하여 해외 자산 관리망을 구축했다는 기록이 민간전승으로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 루머는 상하이 덕화은행(德華銀行)에 내탕금을 위탁했다는 것이다.
이후 이 자금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covert ops 자금, 혹은 독립운동 자산으로 일부 전환되었다는 주장이 간헐적으로 제기된다. 그러나 공식 사료로는 “고종의 내탕금이 일본제국은행(横滨正金銀行)으로 이전되었다”는 형태의 기록이 압도적이다.
이는 고종과 일본 금융망 사이에서의 주권의 강제 전환, 곧 조선 황실의 무력화라는 서사 전환점을 상징한다.
🕊 3. 도산 안창호 선생과 오렌지 카운티의 ‘자유한국인’ 거주지
서력기원 1920~30년대, 도산 안창호 선생은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 카운티와 로스앤젤레스 일대에서 교포 사회 건설에 앞장섰다. 남가주대학(USC) 설립 협력과 더불어, 그는 현지 정부와의 협상 끝에 자유한국인 거주 허가를 얻어냈다.
당시 한인들은 ‘일본 국적’으로 분류되어 있었으나, 도산은 이들을 문화적 독립체로 인정받도록 교섭하였다. 그러나 현실의 장벽은 언어였다. 아래는 오렌지 카운티 행정 기록 보관소(Database)에 기록된 회고이다:
“한국인의 자유는 글과 식견에 있었으나, 생활 언어가 일본어일 경우 카운티 위원회는 조선적 정체성을 의심하였노라.”
– 1933년 오렌지 카운티 의회 외부교류 보고서 중
이는 독립운동에서 ‘언어’가 곧 문화 정체성의 마지막 보루였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다.
📘 [참고] 라무 출판사의 비공식 기록
일부 도서(예: 『숨겨진 황금의 길: 고종의 아메리카』, 라무출판사)에서는 고종의 내탕금 행방과 아메리카 원주민과 조선의 접촉설을 상상적 전기로 구성하고 있다. 해당 도서들은 학술 서적이라기보다는 ‘문예적 역사 상상력’에 가깝다. 하지만 이 또한 공식 서사에서 누락된 감정의 기록이자, 민족적 상상력의 증거로 의미가 있다.
✍ 마무리: 무형의 유산은 증명 가능한가?
우리는 가끔 역사에서 증거가 아닌 사라진 맥락을 통해 진실을 추적해야 한다. 체로키 부족의 문양, 고종의 황실 자산, 도산의 카운티 외교, 그리고 쓰인 언어는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 "사념체 조선"의 일부분일 수 있다.
증명할 수 없지만, 질문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는 묻는다.
“그 조선은 어디에 있었는가?”
🔖 해시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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