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글

📌 〈제국의 그림자와 문명의 이동 — ‘제3의 고구려’와 로마의 계승 사슬을 비교하다〉

해머슴 2025. 12. 6. 10:01

1. 제국은 무너져도, 문명은 남는다

역사를 깊이 들여다보면, 이상한 풍경 하나를 만나게 된다.
지도가 바뀌었는데도, 문화도 제도도 사상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는 멸망했는데, 그에 딸린 문명은 후대의 어느 지점에서 ‘형태를 바꿔’ 다시 시작한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적 재건이 아니라,
문명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이동하는 ‘생존 전략’이다.
서양의 로마가 그랬고, 동북아의 고구려도 그랬다.

2. 서양이 말하는 “제3의 로마”

서양 문명에서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제3의 로마(Third Rome)”다.

1st Rome (로마 제국)
지중해를 중심으로 고전문명을 전개한 최초의 제국.

2nd Rome (비잔티움)
로마의 법·종교·문화를 동방에서 재구성한 동로마.

3rd Rome (모스크바 대공국)
비잔티움의 황실 혈통과 기독교 정통성을 계승했다고 주장하며
“우리가 마지막 로마다”라고 선언한 제국.


이 삼중 구조는 단순한 ‘왕조 계승’이 아니라,
문명의 중심이 이동하는 패턴을 잘 보여준다.

로마가 무너졌다고 해서 로마 문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그 정신이 동쪽으로 움직이며 재구성된 것이다.

3. 동북아에도 존재한 ‘문명 이동의 사슬’

동아시아에서도 비슷한 구조가 존재한다.
그 시발점은 고구려다.

고구려는 한반도와 만주 전역을 아우른 북방 제국이었고,
정복과 외교, 해양과 초원을 모두 다룬 복합 문명체였다.

그 고구려가 멸망하자 남은 선택지는 둘이었다.

1. 사라지거나


2. 다른 형태로 다시 태어나거나



고구려의 유민·관료·군사 집단은 후자를 택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발해(대진)이며,
더 멀리 황해를 건너 도달한 지점이 바로 산동의 ‘제(濟)’ 정권이었다.

이 계보를 처음으로 학술적으로 정립한 사람이
바로 연세대학교 사학과 지배선 교수(Professor Ji Baeseon)이다.
그는 이 흐름을
“제3의 고구려(Third Goguryeo)”라고 명명했다.

4. 발해(대진)과 산동 제는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었다

기존 역사서에서는 발해와 산동의 제를 서로 무관한 존재처럼 다룬다.
하지만 연구가 깊어질수록, 두 정권은 놀랍도록 ‘쌍생아적 성격’을 띠고 있음이 드러난다.

✔ 두 국가는 고구려 유민 기반

발해의 지배층 대부분은 고구려계였고,
산동 제 정권을 이끈 이정기·이납·이사도 역시 고구려계 무장이었다.

✔ 두 국가는 약 75년 동안 동시대에 존재

같은 시대, 같은 공간, 같은 문명적 기억을 공유했다.

✔ 두 국가는 모두 당을 견제하며 동북아 질서를 조율

발해는 북방·해상 네트워크를,
제는 황하·산동 지역의 물류·군사 네트워크를 장악했다.

✔ 일본과는 경제·무역·안보 협력 체제 구축

발해·제·일본은 상호 교류하며
동북아 해상권을 공유한 사실상 3각 체제였다.

즉, 발해와 제는
“동쪽과 서쪽에서 각각 재건된 고구려의 두 심장”이었다.

5. ‘제3의 고구려’ 개념은 왜 중요한가

지배선 교수의 ‘제3의 고구려론’은 단순한 역사 재조명이 아니다.
이는 동북아 문명사의 축을 다시 세우는 관점 변화에 가깝다.

왜냐하면,

> 고구려는 백제·신라 사이에 끼인 변두리 국가가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문명 배치에 영향을 준 제국이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발해는 북해와 흑수, 말갈·거란 네트워크를 장악했고
산동 제는 조운(漕運)·연운항·황하 수군로를 기반으로
당의 동부 경제 축을 흔들었다.

이 둘은 고구려의 잔존이 아니라,
고구려의 재출현이었다.

6. 일본은 이 구조를 정확히 이해했다

일본은 대진(발해)과 제 정권 양쪽과 교류했다.
이것은 단순한 외교가 아니다.
무역·해군·항로 등 전방위적 협력으로,
일본은 이 두 세력의 존재를 ‘하나의 흐름’으로 보았다.

결과적으로
한반도–만주–산동–일본을 연결하는
거대한 문명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7. 고구려 문명은 ‘멸망’이 아니라 ‘확장된 재편’이었다

지도를 보면 고구려는 668년에 멸망한다.
그러나 문명사의 시야로 보면, 이것은 종말이 아니다.

발해에서 고구려는 해양제국으로 관념화되었고

제(濟)에서 고구려는 군사·정치 네트워크로 재구성되었다


이 두 개의 중심이
약 75년 동안 동시에 뛰고 있었다는 사실은
동북아 문명사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것이 바로 “제3의 고구려”라는 개념의 핵심이다.

로마 문명이 세 곳을 거쳐 이어졌다면,
고구려 문명 또한 두 축을 통해 재편된 것이다.

8. 결론: 문명은 장소를 선택해 다시 태어난다

우리는 종종 ‘멸망’이라는 단어에 속는다.
그러나 역사는 이렇게 말한다.

> 멸망은 끝이 아니라 이동이다.
문명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꽃핀다.



로마가 비잔티움과 모스크바에서 다시 일어났듯,
고구려도 발해와 산동 제(濟)에서 재생했다.

두 문명은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문명은 중심을 옮기며 살아남는다’는 동일한 원리를 공유한다.

그 원리를 도식화한 것이 바로
〈Rome ↔ Goguryeo 계승 도식〉이며,
이 개념적 기반을 처음 세운 학자가
지배선 교수(Professor Ji)다.

결국 고구려는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다.
그 시대는 지나갔지만,
그 문명은 발해와 제에서 75년 동안 또 한 번 뛰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의 역사 인식 속에서
다시 살아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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