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들에게 “각오가 있으면 된다”는 말은 너무 쉽게 던져진다.
군대, 해외, 고위험 노동, 극한 경쟁.
마치 버티기만 하면 인생이 열릴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군인에게 나이는 중요하다.
한국 기준으로 서른 살 전후면 이미 장교 루트는 거의 고정되고,
개인의 능력과 무관하게 제도적 평가가 따라붙는다.
동맹국 군 경력 이전 역시 “능력만 있으면 된다”는 말과 달리
신분·인종·이주자 포지션·위험 할당이라는 구조적 문제가 함께 온다.
특히 앵글로색슨 국가에서
외국 출신 하위 계층 군인은
국가가 보호하는 인재라기보다
소모 가능한 인력으로 배치되는 경우가 많다.
이걸 두고 “겁이 나서 안 간다”고 말하는 건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국제정세와 제도를 읽은 판단이다.
군문에 선다는 건 멋있는 선택이 아니라
목숨이 한 끗으로 갈리는 선택이다.
그래서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각오가 있느냐”가 아니라
“그 각오를 요구하는 구조가 정당한가.”
절박한 청년에게 모든 위험을 떠넘기며
“네가 선택한 거다”라고 말하는 사회는
책임을 다한 사회가 아니다.
그래서 어떤 선택은
앞으로 나아가는 대신 잠시 멈추는 형태를 띤다.
동료지원가, 정신재활 프로그램,
일상의 리듬을 회복하는 경로는
후퇴처럼 보일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고되고, 성취도 작아 보인다.
하지만 이 선택은
야망을 접는 게 아니라
삶의 기본 토대를 복구하는 작업이다.
신체와 정신, 관계와 자기결정권.
이 토대가 있어야
군이든 해외든 어떤 선택도 감당할 수 있다.
지금 멈춘다는 건
싸움을 포기하는 게 아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정지선을 긋는 일이다.
그리고 그 정지선을 그을 수 있다는 건
아직 자기 삶의 주도권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 한 문장 요약
지금은 싸우러 나갈 때가 아니라,
다음 국면을 위해 살아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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